산소 코뚜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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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회

어머니는 눈은 떴으나 말을 못했다.
백발의 이모 두 분이 문병을 오셨다.
“내가 누구유?”
작은 이모가 어머니 얼굴 가까이 얼굴을 갖다 대며 다시 물었다.
“언니, 내가 누구유?”
언니라고 이번엔 힌트까지 주었다. 반응이 없자,
“나 주덕읍 사는 막내동상이유.”
“모르시는가?”
작은 이모가 옆으로 비켜서고 이번엔 큰 이모가 허리를 굽혔다.
“나 몰라유? 청주 동상.”
큰 이모의 질문은 결과로 바로 내달았다.
“아는데 말을 못하시나, 내가 누군지 알면 눈 껌벅해봐유?”
“사람도 몰라보시나봐!”
이모들이 어머니를 등지고 돌아서며 눈물을 흘렸다.
“네가 수고가 많다.”
“아녀유. 제가 잘못 모셔 이모들한테 제일 죄송해유. 그렇게 보고 싶다고 했다는데 자주 볼 수 없던 제가 이렇게 오래 같이 있으니 꿈인가 싶어서 대답 안 하시는지도 모르지유. 꿈 깰까봐.”
내 목소리가 떨리자 이모들은 눈물을 그쳤다.
다시 열흘이 흘러가고
그 사이
‘내가 누구유?’가 ‘제가 누구유?’로 질문이 바뀌고
큰 형수, 작은 형수, 큰 매형, 작은 매형, 큰누나, 둘째 누나, 막내 누나, 이종사촌, 친조카, 외조카가 와서 똑같은 질문을 어머니에게 던졌다.
어머니는 늘 대답을 못했고 질문자들은 한결같이 자기가 누구라고 문제의 정답을 밝혔다.
질문자들의 내방을 받으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질문자들의 질문은 왜 똑같은 것일까. 질문자들은 어머니 속에 자신이 있나 없나를 질문으로 던졌고 자신 속에는 분명 어머니가 있어 자신은 어머니와 무슨 관계로 존재한다고 밝혔다.
나는 화장실에서 면도를 하다가 질문자들이 놓친 문제점 하나를 찾아냈다.
누구세유?
이렇게 질문을 던져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어머니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다면 상대와의 관계를 어찌 대답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면도를 하다가 멈춘 거울 속의 나를 만져보며 지난번에 만났던 할머니를 거울 속으로 불러냈다. 할머니는 한 손에 손거울을 들고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머리카락을 빗질했다. 치매에 걸려서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면 거울 속에 있는 할머니는 딴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할머니는 자신이 아니라 불쌍한 노인네를 빗질해주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할머니의 행동은 지극히 정상적이지 않은가. 그 할머니가 자신을 잊어버린 게 문제가 될 뿐.
거울을 어머니에게 보여주면 어떨까. 어머니는 거울을 본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자신의 외모마저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거울을 보고 어머니가 자신이 누군지 깨닫는다면 많은 내방자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령 이렇게 말이다. 어머니 쪽으로 다가오는 내방자를 향해 검지를 입에 갖다 대며 쉬! 동생 왔구나, 나 누이여. 사위 왔구나, 나 장모네. 손주 왔구나, 나 할미다…….
어머니에게 거울을 보여드리자.
그러나 나는 어머니에게 거울을 보여드리지 않았다. 어머니가 병에 너무 쇠약해진 자신의 모습을 본다면 정신적으로 해롭기도 할 테고, 어머니 이전 한 여자에게 너무 잔인한 짓이 아닌가 싶어서였다.
물은 자가 대답하는 시립의료원 508호의 밤은 길었다. 어떤 날은 하룻밤에 509호, 510호, 511호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찬송가가 들리기도 하고 울음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나는 컵라면을 먹고 있거나, 죽었던 자가 다시 살아나 첫 출발지에서 다시 시작해 살아 나가 박수를 받기도 하는 코리안시리즈를 보고 있었다. 인생도 일 회, 이 회, 저렇게 기회가 아홉 번 주어지고 경우에 따라서 연장전까지 주어진다면……,
이상하게도 이웃 방에서 사람이 죽어나갈 때마다 어머니는 진땀을 흘리며 신음을 했다. 정말 저승사자가 오고 심하게 아픈 사람 눈에는 뵈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면 나는 겁이 나서, 어머니는 교인이니까 찬송가를 들으며 돌아가시는 게 좋을 것 같아 티브이 채널을 돌려 기독교 방송을 틀어놓았다. 한번은 기독교 방송을 틀려고 티브이에 달라붙어 채널을 누르고 있는 중에 간호사가 들어왔다.
어머니는 아프고 옆방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티브이 채널이나 붙잡고 있는 나를 간호사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밤이 길어 이런 사소한 고민도 링거처럼 천천히 맞으면 내가 처한 상황을 잠시 잊는데 도움이 되었다.

코리안시리즈가 끝나고 재팬시리즈가 끝나도 어머니 병은 차도가 없었다.
어머니는 눈만 떴다가 감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욕창에 살 썩는 냄새만이 어머니 밖으로 외출을 하는 날의 연속이었다. 나는 사 층이 F로 표기되어 있는 쇠두레박을 타고, 어머니가 누워 있는 침대 곁에 서서 올라오며 꼭 살려 내려가겠다고 다짐했었다. 그것은 나의 순진한 바람에서 끝날지도 모른다. 설사 그렇게 된다 해도 나는 내 생에 가장 행복한 날들을 어머니와 단둘이서 한 달 동안이나 보냈으니 후회는 적다.

508호실에 또다시 밤이 왔고 나는 혼자 서툰 기도 혹은 혼잣말을 했다.
어머니, 소가 되셨나요. 왜 코뚜레를 하고 계세요?
어머니, 코끼리가 되셨나요. 왜 코에서 나온 호스로 미음을 드시죠?
어머니, 소처럼 벌떡 일어나세요.
어머니, 코끼리처럼 큰 소리로 저를 한 번 불러주세요.
그리고요, 이건 정말 궁금한 건데요,
“내가 누구여?”
이렇게 물었을 때 제가“엄마”하고 대답한 것은 몇 살 때였나요.
또 장소는 어디였죠?
저는 왠지 향나무가 있던 우물가였거나, 바깥마당에 있던 대추나무 아래였으면 좋겠어요.
제 대답을 듣고 어머니 기분은 어떠셨나요?
어머니 산소 코뚜레 빨리 풀고, 아, 호스로 된 유선 말이에요, 코끼리 코 뽑아내고, 걸어서 안 되면 제 등에라도 업혀 쇠두레박 타고 저 평지에 내려가요.
네?
그러실 거면 아무 대답도 하지 마세요.
그러자고요!
그러자고요!!
아무 말 안 하셨으니까 분명 대답한 거예요.
고맙습니다.
열쇠처럼 쪼그맣지만 내 모든 것을 열어준 어머니, 
나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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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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