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 대문이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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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회

 

고향에서 살며 여러 번 이사를 다녔다. 고향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살았던 집 대문은 함석으로 만든 문이었다. 나무틀에 함석판 두 개를 붙이고 양쪽 흙돌담에 세운 나무기둥이 문의 전부인, 문턱도 없는, 대문이라고 하기에는 좀 초라한 문이었다. 집안 형편에 맞춰 대문도 변했다.
할머니 어디 갔니? 빨래. 엄마는? 빨래. 할아버지는? 빨래. 동네 할머니들이 바깥마당에서 놀고 있던 어린 조카를 붙잡고 말을 걸었다. 늦게 말문이 트인 조카가 무조건 빨래라 답하는 게 재미난지 할머니들 웃음소리가 들렸다. 바깥마당 바로 앞, 개울에서 어머니가 빨랫방망이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군부대 방위병 근무로 밤샘을 하고 와 잠을 청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카가 배우는 단어를 순서대로 기록했다가 세월이 지난 다음에 선물로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석 대문은 차왕—창, 바람 소리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것은 마치 바람이 나도 담을 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대문을 사용하기도 한다고, 열려 있는 대문을 일부러 흔들며 소리를 들려주는 것 같았다. 문으로서 커다란 의미가 없고, 그냥 집 안에 사람이 있고 없음을 알리거나 잠에서 깨어났다는 표식으로 존재하던 그 집의 외여닫이 함석 대문. 문을 여닫는다는 말보다 밀어놓았다가 당겨놓는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리던 그 함석 대문이 새벽부터 우당탕탕 열린 일이 있다.
“애, 죽일라고 혀!” 병이 나 몇 달째 누워만 있던 칠순의 아버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신음 소리를 내며 앓던 조카 눈동자가 허옇게 돌아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입으로 찬물을 물었다가 발가벗긴 조카 몸에 체를 대고 푸우푸우 풍겨댔다. 집 안에 화기가 들어와 그렇다고 하며 아버지는 어머니가 안마당에 걸어놓았던 양철 화덕을 들고 대문을 열고 나가 개울로 내팽개쳤다. 그리고 방에 들어와 다시 쓰러지셨다. 동네에 홍역이 돌고 있었다.
서울서 형수가 다녀가고 조카 몸이 그럭저럭 회복되었을 때다. 어머니가 갑자기 볼일이 생겨 잠든 조카를 놔두고 바깥으로 못 나가게 대문만 닫아놓았다고 했다. 집에 가보니 약에 취한 아버지만 잠들어 있고 조카가 보이지 않았다. 조카가 대문 틈새로 빠져 나간 걸까? 성구야, 성구야! 놀라 조카를 부르며 대문을 나섰다. 대답이 없었다. 대답을 들어보려고 귀를 기울였다. 탁, 탁, 탁. 나무 두들기는 소리가 개울 쪽에서 들려왔다. 너, 거기서 뭐해. 대답도 않고. 빨래! 조카는 물에 적셔 빨던 비닐 조각과 나무작대기 방망이를 들어 보이며 햇살처럼 맑게 웃었다.
고향을 떠올리다 가끔 그 함석 대문을 만난다. 우리들 마음에 마음속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문들이 있다면, 그 문들 중에 대문은 혹 ‘고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키워준 함석 대문은, 추억 속에서 나를 늘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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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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