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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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회

 

석양에 물든 개울물을 차며 피라미 떼들이 희끗희끗 뛰어올랐다.
개울가 풀밭에선 긴 줄에 매여 있는 소들이 주인을 기다리며 굵직한 울음을 휘어 던졌다. 소들은 입을 크게 벌렸다가 턱을 틀며 닫아 어금니에 울음소리가 씹혔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농부들이 다릿발 아래서 웃통을 벗고 손바닥 바가지를 만들어 서로 물을 끼얹어주며 등목을 했다. 개울둑 미루나무에서 귀 먹먹하게 쏟아지던 매미 울음소리가 노을 속으로 빨려 들어가 사위가 고요했다. 소 말뚝을 뽑기 위해 주워 온 돌멩이로 쇠말뚝을 좌우로 쳤다. 쇠말뚝을 뽑아 올리다가 피라미들이 낙하하며 만드는 무수한 물 동그라미들을 쳐다보았다. 피라미 떼가 마치 비처럼 내렸다.
나는 지금도 물고기 꿈을 꾸면 기분이 좋다. 간혹 복권도 산다.
어린 시절 내 별명은 어부였다. 나는 맨손으로 물고기를 잘 움켰다. 맨손으로 잡기 힘든 피라미도 너끈히 잡았다.
피라미 잡기는 기습적으로 접근해, 무리에서 한 마리를 분리시키며 시작된다. 홀로 떨어져 당황한 피라미가 좌측으로 도망하면 좌측 손을 급히 내려 막으며 , 우측으로 돌아서 도망치면 우측 손을 재빨리 내리며, 소리를 친다. 그러면 피라미는 좌우로 왔다 갔다 십여 분을 도망치다가 급기야 지쳐 돌 틈이나 물풀 속에 숨게 된다.
피라미들이 워낙 빨라 손동작으로 겁줄 수 있는 반경을 벗어나기 십상이라 방심은 금물이다. 피라미를 놓칠까봐 너무 근접해도 안 된다. 왜냐하면 덜 지친 피라미가 좌나 우로 도망갈 수 없다고 판단을 내리고 몸 쪽으로 파고들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오랜 경험에서 오는 판단력과 민첩한 동작이 따라주지 않으면 엄두도 못 내는 게 피라미 몰아 잡기다. 피라미 잡기에 비하면 메기나 붕어 잡기는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 우리 면 전체에서 피라미를 몰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다.

큰물이 났을 때 강에서 올라온, 동네 앞 냇가 물고기를 다 잡고 나면 강이 가까운 마을 쪽으로 원정을 갔다. 어떤 날은 이십여 리까지 원정을 가기도 했다. 낯선 개울에 가서도 물여울의 발달 정도, 물의 깊이, 물의 혼탁도, 물고기가 숨을 수 있는 방천과 물가 풀을 보면 어떤 고기가 어디에 얼마나 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맨손으로 물고기 움켜잡기는 순전히 경험과 감에 의존했다. 큰 장마가 진 다음 물이 줄어든 정도에 따라 메기는 어디에 모여 있고, 붕어나 꾸구리(망둥이와 비슷하나 미끄럽지 않은 민물고기)는 어디에 있는지 척 보면 알 수 있어야 했다. 돌 틈과 버드나무 뿌리 구멍에 손만 살짝 넣어봐도 물고기가 살고 있는 구멍인지 아닌지를 분간할 수 있었다. 미끄러운 메기는 아가미에 손가락을 넣어 끌어냈고 붕어는 왼손으로 몰아 오른손으로 대가리를 공략했다. 가끔 뱀장어를 움키면 손에서 다 미끄러져 나가기 전에 이빨로 잽싸게 물기도 했다.
나는 물고기 잡는 법을 나보다 네 살 많은 앞집 김교찬 형에게서 배웠다. 그가 물고기를 잡으러 갈 때면 따라나섰다. 그가 잡은 고기를 물 밖으로 던져주면, 밑둥치에 곁가지 하나를 남기고 잘라 껍질 벗긴 버드나무 꿰미에 꿰어 들고 다니며 물고기 잡는 법을 수년에 걸쳐 전수받았다. 내 또래에는 솟대올에 이종인, 대방골에 백성현, 입장에 김학곤이 잘 잡았는데 그들도 다 스승이 있었다. 그 친구들과 만나 한판 붙을 때는 더 열심히 잡았다. 도제로 기술을 익힌 우리는 서로의 스승 얼굴에 먹칠을 하고 싶지 않아 더 열심이었다.

나는 중학교 때 학교를 잘 빼먹었다. 학교에 내야 할 수업료가 밀리면 등교하지 않고 그냥 집을 나서서 걸었다. 한 삼십여 리 걸어 이웃 면에 있는 중앙탑까지 걷기도 했다. 그 정도 걸으면 서러움도 묽어졌고 눈물도 말랐다. 가출 길을 되짚어 집으로 돌아오다 물가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물고기를 잡곤 했다. 그땐 물고기를 잡아 꿰미에 끼우지 않고 다 살려주었다. 물고기 무게를 손바닥으로 저울질해보다 까만 붕어 눈동자를 보고 잠시 슬퍼지기도 했으나 물고기를 잡고 있는 순간만은 아무 걱정도 들지 않았다. 나를 찾아오라는 담임선생님의 명을 받은 급우들이“야, 어부, 너, 고기 잡고 있을 줄 알았다”고 하며 나타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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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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