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릅을 따며 어머니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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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회

 

오늘은 두릅을 따러 전에 살던 동네에 갔습니다. 저는 두 달 전, 어머니도 와봤던 바닷가 마을에서 이웃 면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걸어서는 두 시간, 버스로는 20분 거리입니다. 그래도 좀 도회적인 곳으로 나온 셈입니다. ‘방문 열면 바로 자연’이 아닌 간판과 건물에 에워싸인 집입니다. 아니, 이젠 집이 아니라 방이군요. 산자락에 있는 참두릅들은 벌써 누군가 따 가고 산 중턱에 올라 개두릅이라 부르는 엄나무 순을 땄습니다. 사실 개두릅이 향도 짙고 맛이 더 나은 것 같습니다. 이맘때 제철인 숭어회를 볕 좋은 곳에 앉아 개두릅 잎에 싸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지요. 어머니야, 날것, 비린 것을 싫어하니 이해가 잘 되지 않겠지만요. 두릅나무를 찾아 산을 타다가 원추리도 뜯고 홑잎나물도 뜯었습니다. 동행한 이곳 출신 형님은 산행을 자주 하는데도 홑잎나물을 모르더라고요. 우리 고향에서는 봄나물 중에 제일로 치는 나물이라고 말하며 혹, 이곳 사람들은 이름을 달리 부르는가 싶어 나물을 보여줬더니 고개를 가로젓는 거 있죠. 동네 형님은 그 작은 이파리를 언제 딸 거냐며 두릅나무 찾아 앞서 가고, 저는 바위에 걸터앉아 들뜬 향이 아닌 기품이 있는, 홑잎나물을 날로 씹어보며 옛일 생각했드랬습니다.
고향 동네 아주머니들과 나물하러 갔다 오는 날, 키는 작으면서도 어머니 나물 보따리는 유독 컸지요. 나물하는 데는 곰바지런한 어머니 성격이 제격이었던가요. 아, 벌써 입에 침이 고이네요. 맷방석에 펼쳐놓은 그 많은 나물 중에서, 저를 위해 따온 ‘시엉’을 어머니는 어떻게 단박에 찾아낼 수 있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싱아였던 것 같아요. 우리 고향에서는 신맛이 나는 풀, 그러니까 며느리 밑씻개 잎, 봉당 밑이나 마당가에 잘 나는 애기괭이밥 풀잎, 그리고 어머니가 나물 가 뜯어오던 달맞이꽃 잎 같은 풀 이파리들을 다 시엉이라고 불렀잖아요. 쇠죽 가마솥에서 피어나던 나물 삶는 내 집안 가득하고 나면 나물비빔밥 잔치가 벌어지곤 했었죠. 그런 날이면 잠든 어머니 몸에서 풀 냄새가 밤새 났고요.
두릅나무 찾아 헤어졌던 동네 형님과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며 만나 빵과 곶감을 먹고 다시 헤어졌습니다. 작년에 두릅을 많이 땄던 산 능선이 생각나 그리 가보았더니 사람들 손을 타지 않고 두릅이 온전히 있더라고요. 그 능선에서 두릅을 많이 따긴 땄는데 미안한 생각이 들었어요. 작년에도 와서 새순을 꺾고 올해 와 또 꺾으니 미안한 맘이 어찌 안 들겠어요. 두릅 따는 일은 나무에 가시가 있어 힘들기도 하지만 새순을 똑, 꺾는 일이라 잔인해 나물 뜯기 중 유일하게 여자들보단 남자들이 할 일 같더라고요. 전에요, 제가 한번 산달래, 원추리나물을 하러 집을 나서는데 동네 아주머니가 어디 가냐고 묻더라고요. 나물 캐러 간다고 하기엔 체통이 서지 않는 것 같아서 두릅 따러 간다고 거짓말을 했었죠. 거짓말하면 못쓴다고요. 작년에 어머니 찾아뵈었을 때 어머니가 거짓말 가르쳐준 거 아녀요.
얘, 올해 네 나이가 몇이냐? 어머니 이렇게 이 손가락처럼 마흔여섯이요. 어휴— 얘, 이젠, 틀렸다. 뭐가요. 장가들긴. 너무 많이 속이면 안 되고 한 일곱 살만 속이면…… 모를까. 아이, 어머니도. 친척 중에 누구도 속였고 동네에 누구누구도 그랬는데 잘들만 살더라. 아이, 그래도 그렇지요, 어머니. 내가 하도 답답해서 그런다. 그 느뭐 시인이 뭔지 모르지만 너도 정신 바짝 차려라 얘. 시 쓴다고 다 그런 거 아녀요. 술 좀 그만 마시고. 위험하니까 바다에 들어가지 말고. 저, 술 끊은 지 반년 지났어요.
두릅도 생각보다 많이 따고 해서 풍경이 트인 바위에서 쉬며 제가 살던 바닷가 마을을 한참 쳐다보았습니다. 6년 전이었죠. 매형님 차를 타고 어머님이 제 집을 불쑥 찾아온 날 말입니다. 그날이 어머니 팔순잔치 대신 식구들끼리 모여 밥이나 한 끼 하자던 날이었죠. 못난 저는 고향에 가지 않고 동네 친구 새우젓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다 이틀 만에 막 들어왔을 때고요. 가지가지 챙겨온 음식을 먹는데 당신은 먼 길을 와 입맛이 없다고 하며 다 알아서 한다고 그냥 내버려두라고 해도 마당에 풀을 뽑고 부엌 청소를 하시고 수돗가 이끼를 수세미로 닦으셨죠.
이제 거동도 못해 기저귀를 차고 누워 계시는 어머니. 못난 저는 어찌해야 할까요. 오늘은 단지, 봄볕에, 등에 진 두릅 향에, 어찔어찔 발을 헛딛기도 한 날이었습니다. 어머니, 이 봄 정신만이라도 맑게 한 번만 더 피어나주세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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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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