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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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회

밥이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하늘의 별을 함께 보듯이

밥은 여럿이 갈라 먹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갈 때에

하늘을 몸속에 모시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아아, 밥은 모두 서로 나눠 먹는 것.

 

명동성당과 붙어 있는 계성여고 학생들이 닫힌 교문을 넘어 도시락을 걷어다가 주었을 땐 목이 메어 밥을 넘기지 못하고 여러 명의 농성자가 울었다. 각계 민주사회단체의 농성 지지성명이 이어졌고 농성은 계속되었다. 농성 삼 일째가 되면서 계엄군이 들어온다는 말이 나돌았다. 농성대는 계엄군이 들어오면 어찌할까를 논의했다. 결론은 시간을 끌고 처참히 죽어가며 정권의 극악함을 널리 알리자였다. 사제실, 성당 등 지정된 곳으로 흩어져 최후까지 저항하다가 죽기로 결정하고 각자의 최후 저항 장소를 정했다. 새벽, 계엄군이 들어온다는 소리가 들렸다. 문화관에서 교대로 눈을 붙이고 있던 농성자들이 놀라 일어나 달려간 곳은, 사전에 약속한 곳 이 아닌 성당 입구였다. 그들의 손에는 총칼과 맞설 나무 막대기가 들려 있었다. 농성자 한 명이 정신을 차리게 하려고 거짓말을 해보았다고 했다.

농성 사 일째 밤. 농성을 해제하면 귀가 후 사법조치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함세웅 신부가 정부 당국자로부터 받았다고 했다. 농성자들은 농성을 풀 것인가 아닌가를 결정하기 위해 격론을 벌였다.

 

나는 항우울제를 먹고 있었다. 수중에 갖고 있던 알약을 반으로 쪼개고 또 반으로 쪼개 먹으며 견디다가 의료 봉사대를 찾아 신경 안정제를 달라고 했다. 의료 봉사를 하고 있던 약대생이 약은 주지 않고 따라오라고 했다. 수녀님과 함께 차를 타고 나가면 안전할 거라며, 많이 아파 뵈니까 바깥으로 나가 약을 처방 받으라고 했다. 차에 탄 내 손을 수녀님이 꼭 잡아줬다. 따듯했다. 경찰을 통과하면서도 마음이 편안했다. 수녀님이 서대문에 있는 한일병원까지 나를 바래다줬다. 응급으로 약을 짓고 시간이 늦어 갈 곳이 없다고 여차여차한 사정을 말했다. 경비 아저씨가 로비에서 하룻밤을 지낼 수 있도록 허락해주며 피로회복제 한 병을 줬다.

 

티브이에서는 김수환 추기경의 낮은 곳을 향한 사랑과 민주화를 위한 결단의 순간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김수환 추기경이 온몸으로 막지 않아 군인들이 명동성당에 난입했다면 내 운명은 참 많이 변했을 것이다. 또 나라의 운명도 어떻게 변했을지 모를 일이다. 김수환 추기경은 우리 곁을 떠나면서까지도 육체의 눈을 기증해 사람들 맘에 사랑의 눈을 뜨게 하셨다.

죽어 더 오래 살, 나라의 어른 가는 길을 보며 나는 된장찌개를 먹고 있었다.

눈물은 내려가고 숟가락은 올라가고.’

 

*위의 글 중 6월 민주항쟁 전개 과정은 6월 민주항쟁(유시춘 저)을 참고하였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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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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